0레벨부터 999 레벨에 도달할 때까지 쓸 만한 방패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. 의복과 신발은 수십 번 바뀌었지만, 제 왼손에는 늘 칙칙하고 묵직한 흑철 방패만 들려 있었습니다. 하도 오래 들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그냥 제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. 하지만 환생 이후 다시 레벨업을 하며 사냥을 하던 중, 다른 종류의 방패 아이템을 주웠습니다.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동 착용 버튼을 눌렀습니다. 그런데 제 왼손의 흑철 방패는 여전히 문신처럼 그대로 남아있고, 방금 주운 방패만 감쪽같이 사라지는 묘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.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인벤토리를 샅샅이 뒤진 끝에야 원인을 찾았습니다. 그 방패들은 방어구가 아니라, ‘쥔 물건’(악세사리) 칸에 쏙 들어가 있었습니다. 적의 칼날을 막아내야 할 방패가 장신구로 위장해서, 흑철 방패 뒤에 조용히 숨어있었던 것입니다. '쥔 물건'이라는 장신구 칸 뒤에 비겁하게 숨어있는 방패들을 전부 최전방으로 복귀시켜 주십시오. 그리고 그 오랜 세월 홀로 온갖 풍파를 막아내며 제 신체의 일부가 되어준 흑철 방패는 그 공로를 인정해 신규 아이템 '만년흑철 방패' 로... 울컥하네요. 이만 줄이겠습니다.